Defensive Measure

 all  right reserved (c) Son Jongju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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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평범한 우리’의 모습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작가의 얘기 듣기를 즐긴다. 그들이 작품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하고 추리하는 것도 좋지만, 작가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내밀한 그들의 작업과 세상사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한 평론보다는 작가에 대한 인터뷰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저널리스트로 살아왔기 때문일게다. 게다가 이는 진정 동시대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죽은 작가는 말이 없으니까….

여기 또 한 명의 작가를 만났다. 젊은 작가 손종준.

우연히 만났는데, 한때 전시를 고민하고, 이번에는 전시에 맞춰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으니 독특한 인연이라 할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생뚱맞은 질문도, 나름 작업에 대한 냉정한 질문도 던졌다. 작업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근황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를 오랜시간 두서없이 나누었다. 친구와의 술자리처럼 소소하고 진중한 얘기들이 마구 뒤섞인, 인터뷰라는 격식을 생각할 때 ‘즐겁고 편한’ 시간이었다.

 

손종준과의 인연의 시작이라고 할까, (누구나 대부분 그렇겠지만) 꽤 뜬금없었다. 2011년 봄의 파주였다. <아트스페이스 휴>에 업무차 들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또한 전시를 위한 작업 포트폴리오를 가져와 옆에 앉아있었다. 김노암 디렉터가 소개를 시켜주었는데, (혹시 그런 것이 있다면)작가보다는 군인의 ‘포스’가 강하게 풍겼다. 짧은 머리카락, 건장한 체격, 절도있는 태도 등. 그 때 본 포트폴리오의 작품은 충격적이었다. 작품을 직접 ‘걸친’(설치한) 인물의 사진들은 흑백사진의 강한 콘트라스트의 임팩트와 함께 갑옷을 걸친 기사처럼 중세적이면서 판타지 게임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이야기가 들리는 듯 했다. 피상적이 아닌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육체적인 이야기라고나 할까. 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지만, 서로 바쁜 일상은 그 궁금증의 해결을 다음 기회로 미루게 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 2012년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작가들이 직접 기획한 전시의 전시협력으로 참여했는데, 손종준이 그 전시의 참여작가였던 것이다.

 

-<히어로전> 때 최초 아이디어를 제공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한 듯 하다. 촉박한 시간 내에서 내실있는 전시를 만들어내는 데만 주력했으니. 이번 전시 인터뷰를 계기로 작업과 작가에 대해서 한번 확실히 얘기해보자(웃음). 이번 전시 작업을 통해 무엇을 세상에 이야기하고자 했나?

“거대한 사회, 혹은 거대한 무언가, 음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사회 시스템, 계층, 그 외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것에 둘러 쌓여있는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내길 원하진 않았다. 직접적으로 어떤 질문을 던지면, 답도 직접적으로 나오니까. 그래서 이 인터뷰도 ‘약간은’ 위험하다(웃음). 이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작업의 흐름에 장치를 좀 많이 넣고자 했다. 독립적인 듯하지만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날카로운 정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작업에 장치하고자 했다. 우회해서 정곡을 찌르는 반전을 노린 것이다.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앞에 언급한 거대하고 뭔지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에 맞설 자신이 없음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이 없다고 하면 소극적인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 같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드러내면서까지 하고는 싶지 않은, 나에 대해서 알아주기를 원하지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를 원하지는 않는, 그런 복잡하고 애매한 입장 말이다. 이런 것이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니까. 이렇듯 대부분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부정적인 입장에 대해 건드려봄으로써 사람들이 이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제목은 같지만 전작인 <Defensive Measure(자위적 조치)>는 직접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 오브제였다. 흡사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듯한 갑옷같기도 하고. 그리고 전작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맞춤형의 ‘주문자 생산 방식’이었다면 이번엔 작가 자신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거 일본에 유학을 했을 때, 처음에는 이방인의 느낌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적인 상황, 이른바 일본인의 혼네(本音,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모습)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느낌이었다. 재일교포의 느낌이랄까. 그때 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앙케트 기사였는데, 지방공무원이 국가 기관에 1년 연수할 동안 옆자리의 사람과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는 데 일반적으로 6개월이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서로간에 벽을 쌓고 개인적인 성향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개인적이 될 수 밖에 없는 ‘방어기제’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심리적인 상황을 각 개인에 맞게 갑옷의 형태로 형상화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Defensive Measure(자위적 조치)>라는 개념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제작한 작품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방어하지만, 이 때문에 자신에게도 상처가 되는 기묘한 형태가 되었다. 그런데, 2년 전 한국으로 왔더니 일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다. 중학교 시절 인천에서 서울 8학군으로 전학을 간 적이 있다. 교육적인 이유였는데, 그곳에서 사회의 ‘격차’라는 것을, ‘벽’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결국 인천으로 돌아왔는데, 당시의 기억은 나에게 강남이라는 지역에 뭔지 모를 반감, 편견을 만들었다. 아마 이것이 나에게는 개인적인 ‘콤플렉스’라 할 것이다. 이 기억과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 느낀 이 사회에 대한 느낌이 이번 작품으로 구체화된 것이라 하겠다.

과거의 경험에 대한 나름의 공부를 통해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이번 작품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의 오브제는 아니다. 복잡한 기계장치같은 느낌인데, 전체적인 작품의 레이아웃을 잡고 시작했는가?

“작품을 제작할 때 전작이든 이번 작품이든 레이아웃을 잡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습관인 것 같다. 레이아웃을 잡고 시작하면 작품에 한계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재미가 없었다.

이번 작품의 경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지만 이를 어떻게 풀어낼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뭐든지 그렇겠지만, 돌파구는 우연히 나왔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샤워하다가 ‘모스 부호’가 퍼뜩 떠오른 것이다. 마치 부력을 이용해 물체의 질량과 성분을 알아낸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친 것이다(웃음). 모스 부호가 떠오르자 나머지는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 이야기하고자 한 부분을 모스 부호로 변환한 후 이를 전기적 장치로 ‘지금 방송되고 있는 뉴스’의 화면에 조명으로 변화를 주는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LED옥외광고판으로 희미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이른바 수수께끼를 던지는 것이다. LED옥외광고판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문장이 영어로 소개된다.

“I want to talk with you about everything, somehow that doesn’t mean I’ll let you know everything about me”,

“I am not Hikikomori”,

“I am just anyone but this is not what I wanted to be”,

“I am dancing on the edge”,

“I want to my know identity, but that’s not necessary”.”

 

-작품이 수공적이다. 모스 부호를 만들어내는 턴테이블 같은 알루미늄 오브제는 사실 직접 제작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왜 이렇게 장인처럼 수공적 방식을 고수하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레이져 컷팅 등 공장에서 찍어내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공장에서 제작된 작품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이는 순전히 작품의 내용에 기인하는 부분인데, 나의 모든 작품들은 ‘사람의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이 직접 입기도 하고. 공장에서 제작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뭐랄까… ‘사람’에게 나의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내가 직접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 나의 진심을 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일종의 ‘신념’이랄까.”

 

-왜 이렇게 나와 세상, 사람 간의 ‘관계’에 집중하는가? 왜 이것이 중요한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이세상에 또 있을까? 이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하는 행위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지 않은가.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가식적인’ 이야기들도 그럴 것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일기를 쓰는 사람을 보았다. 일견, 솔직하게 자신의 일기를 쓰는 것 같지만, 몇 문장만 읽어도 이 글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쓰는 사람은,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교묘하게 미사여구로 위장하지만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읽은 사람도 가식적인 언어로 그를 위하는 척 답변하고, 쓰는 사람은 더욱 자신의 가식적 일기를 세상에 늘어놓는다. 이러한 피상적인 디지털적 관계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사라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관계’, ‘우정’, ‘사랑’, ‘의리’, ‘존경’ 등의 개념의 단어를 피상적으로 남발하는 것이 아닌지, 혹은 디지털 세상 때문에 이러한 개념이 닳아버리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아날로그적 인간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러한 단어의 의미가 삶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관계를 동경하며 갈망하는 마음이 작업으로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 작품을 제작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항상 다른 매체와 연관시키는 듯하다. 전작이 오브제와 퍼포먼스, 사진이라는 기록을 통해 완결이 된다면 이번 작품은 오브제, 오브제가 생산하는 모스 신호, 그 신호를 통한 메시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왜곡과 글씨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완성한다. 이런 작업방식을 쓰는 이유가 있는가?

“음,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혹시 내가 요즘 유행하는 매체를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멋’을 위해서 의미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담백하게 이용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어떤 매체라도 내 생각을 담는 데에 한계를 두지않고 이용할 생각이다.”

 

-작가 노트나 작품 속에 ‘히키코모리’리는 단어가 등장한다. 어차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 속에 넣고자 했다면, 꼭 이 단어가 필요했는지 궁금하다.

“나에게 이 단어가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크던 작던 콤플렉스와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 ‘은둔형외톨이’라고 할 수 있는 ‘히키코모리’는 일본에서 큰 이슈였다. 일본에 갔을 때 이 단어를 통해 사회 속 개인이 가지는 콤플렉스와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과 상대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이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번 작품의 제작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으며, 일반적으로 작업 시간은 어느 정도 가지나?

“이번 작업은 제작에만 거의 반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니까. 작업은 주5일간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규칙적으로 한다.”

 

-작업이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나?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해결이 되진 않는다. 모든 작업은 내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것을 지난해 입주했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작가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작업이 안 풀릴 때는 계속 그 작품에 대해 생각을 한다. 이른바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는거지(웃음).”

 

-원래 미술작가가 되고 싶었나?

“솔직히 이야기해야 하나?(웃음)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학교에 잘 적응을 못했다. 사춘기 시절 이른바 ‘좋지 않은’ 친구들과도 어울렸고. 성적이 떨어지면서 사관학교의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대학에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어디선가 ‘미술을 하면 공부를 덜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진했던거다(웃음). 그래서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재미있는거다. 게다가 이 미술학원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린다는 선배, 선생님들을 보니까 오기도 생기고 말이다. 그래서 미친듯이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때 ‘과학상자’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다행히 손재주와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결과물이 좋으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재미에 푹 빠지면서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원래 미술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운명인 것 같긴 하다.”

 

-터프한 청소년기를 보냈나보다(웃음). 첫 인상이 군인같았는데(웃음), 작업실에 해병대 모자가 있어 놀랐다. 해병대 출신인가.

“1997년 IMF가 오면서 아버지 사업에 문제가 좀 생겼다. 집에 ‘입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생각되어 가장 빨리 입대가 가능한 해병대에 지원했다. 당시에는 군대가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육군에 지원하면 2년이 걸린다고 하더라. 체력적으로는 자신이 있었기에 지원했는데, 사실 정말 고생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인내심을 배운 것 같다.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버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작업 외에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이 또한 솔직히 이야기해야 하나?(웃음)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힘들다. 가뭄에 콩 나듯이 (정말) 가끔 작품이 팔리고, 학교 강의로 생활하고 있으니까. 다행히 올해 홍은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하게 되어 작업환경 면에서는 도움이 된다.”

 

-미술작업 말고 가장 관심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내와 두 딸이다. ‘보통남편’, ‘보통아빠’들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게 형편상 잘 되지 않아서 속상할 때도 많지만. ‘보통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업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작업 외의 취미생활이라고 할까?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과 구상에 소비하기 때문에, 별다른 취미생활이라 할 것은 없다. 작업 사이사이 즐겨하는 일이 ‘뜬금없지만’ 지도를 보는 것이다. 과거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셨는데, 새학기에 가져다 주시는 <<사회과부도>>가 그렇게 재미있었다. 여전히 지도책이나 스마트폰의 지도 보는 게 재미있다. 같은 시대의 다양한 공간을 살펴보는 게 흥미롭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지도보는 룸메이트’ 같은 느낌이다(웃음). 음악이나 영화도 즐겨 듣고 보나?

“음악도 좋아한다. 가사가 ‘시’처럼 전달되는 가요가 좋다. 유재하나 김광석 노래같이 말이다. 최근에는 조용필의 옛날 노래도 점점 좋아지는데, 나이가 들어서인가(웃음). 아마 나이에 맞게 감성이 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자위하지만, 혹 작업적으로 ‘실험적’인 작품보다 ‘편한’ 작품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음악은 조용필의 옛날 노래를 들어도 작업만큼은 더욱 젊어지려고 다짐한다. 영화는 작업에 도움이 되는 SF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도 즐겨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펄프픽션>, <러브 어페어>, <토요일밤의 열기>다. 아름답고 열정적이고 신선하니까.”

 

-음악을 들으면서도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하니 놀랍다(웃음). 그렇다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는가?

“이불 작가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학교 선배님이라 막연히 좋아했는데, 대학원 시절 논문을 쓸 때, 이불 작가의 작업세계 리서치를 하면서 ‘진심’에 기반한 작품에 큰 감동을 받았다.”

 

-<라스>적인 질문을 해보겠다. 손종준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

“부끄럽지만 좀 거창하게 이야기해보겠다. 개인적으로 미술가는 ‘이 시대의 사상가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재와 관계없이, 주제는 이 시대의 담론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예술 장르 중에서 미술, 그중 ‘컨템포러리 아트’는 가장 고급스럽게 사회적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꿈꾸는 예술가상이 있는가?

“이른바 잘 나가는 작가, 잘 팔리는 작가, 이런 것보다 ‘괜찮은 작가’가 되고 싶다.

‘괜찮은 작가’란 개인적으로 ‘그 시대에 의미있는 작가’라는 의미다. 음, 너무 거창한가(웃음).”